과거
2007년 수련의 시절 나는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응급실에서였다. 외래에서 기관지내시경을 받고 귀가했던 70대 남자 환자가 “소변을 누고 싶은데 도저히 안 나온다”며 응급실에 내원했다. 기관지내시경을 위해 투여한 약물로 인해 소변 배출이 힘들어졌던 것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그의 아랫배는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응급의학과의 오더를 받아, 소변 배출을 돕기 위해 고무관을 요도에 끼워 소변을 빼냈다.
눈이 돌아가게 바쁜 응급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쳐 놓은 커튼 안에서 그와 나만 남겨진 상태로, 소변을 700㏄ 이상 빼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그가 안타까워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그의 표정이 많이 편안해진 것을 확인한 후 내가 침대 곁을 떠나려 하자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어이구, 못 참겠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려 했다. 그를 있는 힘껏 뿌리치고 나온 길로 나는 응급의학과 치프를 찾아가 방금 일어났던 사건을 신고하고, 치프 선생님과 함께 환자를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사과를 받았다.
현재 상황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전공의 1768명을 대상으로 병원 내 성희롱, 성추행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응답자 중 28.7%가 성희롱을, 10.2%가 성추행의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고, 대부분 피해자는 젊은 여자 의사들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환자인 경우가 제일 많았고, 그다음이 상급자였다.
사실은 꼰대 감성일뿐
최근의 나는 성추행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다. 대학생 때까지 버스,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당했던 일들이 종종 있었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수련의 시절에도 남자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적이 있다. 한창 성추행을 많이 겪던 시절에는 대중교통만 타도 몸을 사리곤 했는데, 요즘은 ‘성추행’을 떠올리는 일조차 드물다. 이럴 때 ‘와, 요즘은 성추행이 줄었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 나에게 성추행이 덜 일어날까?’ 생각해야 한다. ‘세상 참 좋아졌어’라는 건 꼰대 감성일 뿐이다.
달라진 사회적 지위는 이런 데 필요한 거다. 진료실 안에서 내가 환자들에게 모욕감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점잖았던 그 환자가 우리 직원과 간호사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을지 놓치지 않는 것, 그래서 이 공간이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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