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란?
文解力: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을 뜻한다.
문해력은 글자를 보는 행위가 아니라 문장을 실제로 이해하는 능력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을 좌우한다. 요즘은 문장뿐 아니라 특정 분야에 대한 인식으로서 생태 문해력, 이미지 문해력,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문해력 등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글을 읽는 것과 이해는 전혀 다른 차원
한국은 훌륭한 한글 덕분에 문맹률 1% 이하의 세계 최고의 글자 해독 국가지만, 문해력은 반대다. 조사 시기와 연령대마다 다르지만,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혹은 중간 이하라는 게 중론이다(20여 년 전, 최하위 통계가 있었다). 한국은 ‘지식 강국’과 거리가 멀다. 아마 한국사회의 문해력을 가장 실감하는 집단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일 것이다.
왜 이런일이
“‘다섯 줄’만 넘어가도 읽기 힘들어하는 아이들”(<한겨레> 인터넷판, 2019년 8월13일)이 제시한 대안을 보자.
“‘북튜버(book+youtuber)’가 대신 읽어주는 책보다는 아이 손으로 직접 종이책 만져보고 소리 내어 읽어봐야 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모든 공부는 몸과 텍스트의 닿음과 느낌, 접촉을 통해 몸으로 익혀야 한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한몸이 될 때까지 친다. 반면, 공부는 남이 하는 것을 보는 시대가 되었다. 대책을 찾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전기(스마트폰, 컴퓨터 등)와 매개를 거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산업자본주의 시기에는 몸을 써서 노동(공부)을 함으로써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았다.
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노동은 미덕이었다.
지금은 소비 주체의 시대다. 소비가 곧 노동이다.
온라인 공간에 오래 머물면서 자기 시간을 포털 사이트에 제공하는 소비행위가 공부(검색)가 되었다. 이 대세를 거스를 기력이 있는가. 하향평준화는 필연이다. ‘긴 글’이나 조금만 익숙하지 않은 문장에도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근본적으로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를 직면하고 보완하려는 사회가 있고,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언설로 문제 인식조차 없는 사회가 있을 뿐이다. 한국은 후자의 대표적인 국가다.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때문에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 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무지라는 가정을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ps-
나도 점점 글을 읽는게 귀찮아 진다.
글을 많이 읽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집중력이 낮아지면서 글을 읽는 것을 불편해지고
듣고 보고는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특정영역은 여전히 노력(=노동력, 하기 싫은것)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출처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46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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