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n’t it too hard for them? What are you trying to do, teach Kant to kindergarteners?
Or, somewhat more suspiciously, what kind of philosophy are you teaching them?
These reactions are understandable, because they stem from very common assumptions
– about children and about philosophy.
Central to our work at the Center for Philosophy for Children at the University of Washington is
the conviction that we ought to challenge beliefs about children’s limited capacities,
and to expand our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philosophy and who is capable of engaging in it.
As one seven-year-old put it: ‘In philosophy, we’re growing our minds.’
(너무 힘들지 않아요? 유치원생들에게 칸트를 가르치려고 하니? 아니면, 좀 더 의심스러운 것은, 어떤 종류의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가?
이러한 반응은 어린이와 철학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가정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워싱턴 대학 아동철학센터(Center for Children for Children for Children)에서의 연구의 중심은 아동의 제한된 역량에 대한 믿음에 도전해야 한다는 신념과 철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신념이다. 한 7살짜리 아이가 말했듯이: '철학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키우고 있다.')
Developing an understand of the world
The point is not to educate children about the history of philosophy, nor to instruct them
in the arguments made by professional philosophers.
Children’s questioning can constitute the most primary of philosophical activities:
reflecting on the meaning of ordinary experiences and concepts in order to develop an understanding of the world, others and themselves.
(핵심은 아이들에게 철학의 역사에 대해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 철학자들이 하는 주장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철학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구성할 수 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기 위해 평범한 경험과 개념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Adult's way of thinking to childern
We characterise children as curious and full of wonder,
but we assume that they don’t really understand the philosophical dimensions of
the larger questions they pose.
But, if we think back, many adults will recall that their philosophical wondering began in childhood.
For a lot of us, in fact, childhood is the period of life in which we spend the most time wondering.
Quite a few professional philosophers’ interest in the field emerged from an early enthusiasm for questioning.
Some describe the experience of taking a philosophy class or reading a philosophical text and
recognising the questions involved as those they’d been thinking about since they were young.
(우리는 아이들을 호기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묘사하지만, 아이들이 그들이 제기하는 더 큰 질문의 철학적 차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우리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어른들은 그들의 철학적 호기심이 어린 시절에 시작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궁금해하며 보내는 삶의 기간이다. 그 분야에 대한 꽤 많은 전문 철학자들의 관심은 초기 질문 열기에서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 수업을 듣거나 철학적인 글을 읽고 관련된 질문들을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던 질문들로 인식하는 경험을 묘사한다.)
During a class
Once, during a philosophy session I was leading, a 10-year-old child asked me:
I want to know why we work hard and worry about money, and
what we’re going to do when we grow up,
what we’ll do for work and food and shelter,
when one day we’re just all going to die.
I mean, what’s the point?
What does it mean to be alive?
(한번은, 제가 이끄는 철학 시간에, 한 10살짜리 아이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왜 열심히 일하고 돈에 대해 걱정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자라면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가 일, 음식, 피난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죽을 것입니다. 내 말은, 그게 무슨 소용이야? 살아있다는 게 무슨 뜻이죠?)
The fact that we are philosopher
Philosophical wondering is part of being a human being. What is the right thing to do?
Why do people have to die? Is this person really my friend?
When we think about such questions, we’re doing philosophy, participating
in a tradition that’s been around for thousands of years.
Most adults who ponder philosophical questions aren’t professional philosophers,
but that doesn’t disqualify them from engaging in philosophical enquiry.
Likewise, the fact that children are beginners at philosophy doesn’t mean
that they’re not doing philosophy at all.
Although young children don’t engage in philosophical exploration through
reading philosophical texts or writing papers or earning degrees,
they can nevertheless take part in the discipline.
Important philosophical questions and ideas
– subjects such as the meaning of happiness, justice and fairness, the relationship between
freedom and community, the nature of beauty, and many other matters –
emerge not only from the works of classic and contemporary philosophers,
but also from picture books and other children’s literature, art and music, film, games and
activities, and from many of the ordinary activities we engage in every day.
(철학적 호기심은 인간의 일부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 왜 사람들은 죽어야 하죠? 이 사람이 정말 내 친구인가요? 우리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철학을 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철학적 질문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성인들은 전문적인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것이 그들이 철학적인 질문에 참여하는 것을 결격시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철학에 초보적이라는 사실이 그들이 철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 철학적인 글을 읽거나 논문을 쓰거나 학위를 따는 것을 통해 철학적인 탐구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규율에 참여할 수 있다.
행복의 의미, 정의와 공정성, 자유와 공동체의 관계, 아름다움의 본질, 그리고 많은 다른 문제들과 같은 중요한 철학적 질문과 생각들은 고전과 현대 철학자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림책과 다른 아이들의 문학, 예술, 나타난다. 우리가 매일 하는 많은 평범한 활동들로부터, 음악, 영화, 게임, 활동.)
What is friendship?
A conversation with some elementary school children,
for instance, called into question the generally accepted view that friendship is
necessarily a reciprocal relationship.
Aristotle contends that the primary feature defining friendship is mutual care and attentiveness, or
what he calls ‘goodwill’: friendship is reciprocal. Most philosophers agree.
Likewise, much of the research in this area assumes that reciprocity and mutuality are essential for
a relationship to be termed a friendship.
People are characterised as friends, that is, only if each defines the other as a friend.
But in a conversation about friendship, a group of 11-year-olds disagreed.
They reflected that sometimes one person wouldn’t call a relationship a friendship and
the other person would, but the two might just have different ideas of what it means to be a friend.
One student observed that sometimes there are people who don’t treat you as a friend,
but this doesn’t mean that the friendship doesn’t exist.
They also noted that there can be periods in a relationship that aren’t very mutual,
when one friend needs more and gives less than the other.
Some friendships might be less than fully reciprocal much of the time,
they said, yet we would continue to describe the relationship as a friendship.
Others noted that friendships take time to develop, and sometimes the timing differs for
two people within a single relationship,
because the pace at which closeness evolves might not be mutual
– one friend might feel the connection before the other.
(예를 들어, 일부 초등학생들과의 대화는 우정이 필연적으로 상호적인 관계라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정의하는 주된 특징은 상호간의 보살핌과 주의력, 또는 그가 '선의'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정은 상호적이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동의한다. 마찬가지로, 이 분야의 많은 연구들은 상호성과 상호성이 우정이라고 불리는 관계에 필수적이라고 가정한다. 사람들은 친구로서, 즉, 서로가 서로를 친구로 정의할 때만 친구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우정에 관한 대화에서, 11살짜리 아이들 그룹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때는 한 사람이 우정이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사람이 우정이라고 부르지 않겠지만, 두 사람은 단지 친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반영했다. 한 학생은 때때로 여러분을 친구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관찰했지만, 이것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또한 한 친구가 다른 친구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덜 주는 관계가 되는 시기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어떤 우정은 대부분의 시간동안 완전히 상호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관계를 우정으로 계속 묘사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정이 발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친밀감이 발전하는 속도가 상호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친구가 다른 친구보다 먼저 관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씩은 우정이 발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그 시기가 다르다고 언급했다.)
ps-
오랜만에 어린아이 같이 뇌가 말랑해졌다.
세월은 나를 한계짖게 만든다. 그것이 꼭 나쁜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안다는 것이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걸 담을지에 대한 기준을 필요하다.
다시한번 생각의 유연함과 깊이(시간과 공간적이 생각) 배웠다.
어린이는 예리하고 날카로롭다.
가끔 그들의 예리한 질문은 나의 목에 칼날을 들이댄다.
다시 혼란에 빠지고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나 자신에게 물을 것이다.
파이터클럽이 생각난다.
Who am I.
What do you want to be.
출처
aeon.co/essays/how-to-do-philosophy-with-not-for-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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