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과 펭귄이 서로 몰라도 될 것들을 모르는 채로 살았더라면, 서로 이렇게까지 미워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몰라도 되는 것들, 몰라야 좋을 것들까지 알게 된다. 하수처리장을 빠져 나가는 오염수처럼, 의견 속에 섞여 흘러 나가는, 서로를 향한 감정들.
격렬한 감정에 휘둘려 펜을 쥐더라도 한 문장씩 적다 보면 가라앉고는 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가장 생생한, 그래서 가장 유해한 감정이 즉각 표현된다.
표현(expression)이라는 것이 감정을 밖으로(ex-) 발행하는(press) 속달(express) 서비스라도 되는 것처럼. “디지털 매체는 감정 매체”(한병철, <무리 속에서>)라는 규정도 그래서 나온다.
진보가 보수를, 보수가 진보를, 서로 얼마나 혐오하고 경멸하는지. 이것은 충격을 동반한다. 입장을 비판당하는 것과 존재를 거부당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네 의견은 틀렸다’가 아니라 ‘너는 틀려먹었다’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와 논쟁하다 보면, 별 확신 없이 택한 내 입장을 상대방이 지지하지 않을 때, 상대를 이기는 게 목적이 되기 시작하면서 내 입장도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깨닫는 것이다. 나의 ‘옳음’보다 너의 ‘있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네가 없는 나의 옳음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 우리는 문득 얼마나 유연해지는가.
<프랑켄슈타인>에서도 피조물은 원래 괴물이 아니었다. 버려지는 순간 괴물이 되었을 뿐. 우리는 서로 몰라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보여준다. 그렇게 매일 서로를 버리고, 매일 누군가로 탄생시킨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서성이며 만났다 헤어졌다 할 수 있는 독립적 개인 말고, 양극에서만 서식할 수 있는 괴물을, 괴물 집단을.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11300300115&code=990100#csidx59ea42a7147d077ba011ec6955b1d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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