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수저 계급’이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자녀의 ‘수저 계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왔다. 부모들 학력과 재력,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사교육→특수목적고→수도권 대학→대기업 취업→고소득으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력’과 ‘학벌’을 중심으로 부상 중인 능력 우선주의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능력주의의 허점을 검증할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증방법
교육부의 2020년 정책연구과제로 서울교대가 용역을 받아 실시한 이 연구는 ‘교육체제가 고등학교 서열화 및 계층화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교육을 통한 불평등에 어떻게 작용해왔는가’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졌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한국교육종단연구(2005)와 한국교육고용패널(2004)을 활용해 연구 당시 각각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학생들의 고등학교·대학교 진학 및 노동시장 진입을 추적조사했다.
1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입수한 ‘고교체제 발전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연구’를 보면 부모들의 ‘수저’는 자녀들의 진학과 직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구소득
월평균 가구소득이 700만~1000만원인 가정의 학생들 중 3.5%가 특목고에 진학한 반면, 100만~300만원인 가정의 학생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반대로 월평균 가구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가정의 학생 중 전문계고에 진학한 비율은 4.1%에 불과했지만, 100만원 미만인 가정의 학생 중 전문계고 진학 비율은 10배인 43.7%에 달했다.
부모의학력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도 자녀의 고교 진학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 이상인 가정의 자녀 중 4.8%가 특수목적고에 진학했다. 이어 대졸이 2.4%, 고졸이 1.1%였다. 반면 전문계고에 진학한 비율은 아버지의 학력이 중졸 이하일 경우 41%, 고졸 24.7%, 대졸 10.3%였다.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 이상인데 해당 가정의 자녀가 전문계고에 간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고등학교진학에 따른 자녀의 월급
어떤 고등학교를 나왔느냐의 차이는 대학 진학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취업한 기업의 규모나 소득 수준의 차이로 이어졌다. 과학고 졸업생 중에는 76.7%가, 외국어고 졸업생 중에는 57.9%가 직원 300명 이상 대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문계고 졸업생 중에는 대기업에 취업한 비율이 28.7%, 일반계고 졸업생 중에는 37.7%에 그쳤다. 일반계고 졸업생의 40.7%, 전문계고 졸업생의 47.3%는 50인 이하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이 같은 취업 결과는 소득의 차이로 이어졌는데, 2005년 중학교 졸업자 기준 서울지역 과학고에 진학한 졸업생의 월급은 472만원으로 전문계고 졸업생 월급 190만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서울지역 외고 졸업생과 일반고 졸업생의 월급은 각각 314만원, 231만원이었다.
능력의 ‘근원’ 재력 고착화
교육부 용역의 장기 추적조사와 마찬가지로 최근 입시 성적표에도 ‘수저 세습’ 현상은 강하게 확인된다. 소위 ‘의·치·한·수·약’ 의약계열 합격자나 과학고, 영재학교 진학생 가구의 소득분포는 ‘능력’의 근원을 ‘재력’으로 구체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20학년도에 입학한 전국 39개교 의대 신입생 2977명 중 소득 1~8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577명으로 전체의 19.4%에 불과했다.
소득구간은 1구간이 가장 낮은 소득, 10구간이 가장 높은 소득으로 분류된다. 국가장학금 1유형은 소득 1~8구간에만 주어지는데, 2020년 기준 월 소득인정액 920만원 미만이 소득 8구간에 해당한다. 즉 지난해 의대에 입학한 신입생 10명 중 8명은 국가장학금 대상이 아닌 월 소득 920만원 이상 가구원이라는 의미다. 의대 신입생 중 소득 1~8구간 비율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2017년 24.9%였던 이 비율은 2019년에는 20.4%, 2020년엔 19.4%까지 떨어졌다.
역경점수
능력주의를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부모의 경제·사회적 배경은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시킨다는 점”이라며 “학생들이 ‘나는 이것밖에 못했으니까 이런 취급을 받아도 돼’라며 자기부정을 한다. 능력주의가 신화가 돼버리면서 불평등을 내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능력주의가 공정의 다른 이름으로 여겨지는데 격차를 완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영국이 제도화한 ‘역경점수’를 예로 들었다. 역경점수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성취를 낸 학생들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그는 “역경점수의 취지는 당장의 점수가 낮더라도 더 큰 잠재성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입시나 채용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고려할 수 있는 장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글
https://m.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11102060002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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