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이주연·이정환 저) 표지 이미지
몇 년 전 친구로부터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착이 심한 남자친구에게 구속을 당하던 끝에 GPS로 위치 추적을 당한다는 한 여성을. 남자친구의 감시를 나름대로 피하기 위해서 GPS가 잘 터지지 않는 지하철을 타고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여성을.
'왜 그 여자는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을까?'
질문이 잘못됐다.
이것이 여성에게 잘못을 지우려는 부당한 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물음은 주어부터 잘못돼 있었다. 이 질문은 이렇게 돼야 보다 정확한 것이었다.
'명백한 교제폭력을 저지른 그 남자는 왜 처벌받지 않을까?'
왜 헤어지지 않는가?
이미 가해자는 피해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가해자로부터 벗어나려면 사실상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해야 한다. 이미 이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안전이별'을 할 수 없다. 책에 등장한 한 판결문의 사례를 보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그는 내가 사는 집을 알고 있다.
그는 내 차를 알고 있다.
그는 내 직장을 알고 있다.
그는 내가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내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를 알고 있다.
그는 내 친구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
그는 내 가족을 알고 있다.
내가 숨을 곳은 없다는 말이다. - 23쪽
2017년 7월부터 가해자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기 전까지 그녀를 폭행해 형사 입건된 횟수는 무려 9건이다. 과연 이 상황에서 이 피해 여성이 마주친 한국의 '치안'과 '경찰력'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었을까.
통계가 없다
한국에는 여성폭력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의 저자들은 '교제살인' 108건의 판결문을 직접 찾아나서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108건이라는 숫자는 모든 피해 사례를 정리한 정확한 숫자가 될 수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인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교제살인'으로 사망한 여성의 숫자는 51명이다.
51과 108.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진실은 하나다. '최소한'의 숫자라는 것이다. 108명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사귀다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이 죽음을 제대로 짚어낼 공식적인 숫자조차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 45쪽
충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교제살인으로 몇 명이나 죽었는지 국가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대책을 세울 수도 없다. 물론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는 길을 만드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한국의 '교제살인'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내기도 한다.
'덜루스 모델'의 시초가 된 미국 미네소타주 도시 덜루스에서는 현재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르면 72시간 동안 구속된다. 여기에 더해 가해자가 과거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소위 '위험성 평가'가 실시된다. 그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주거와 고용 등을 돕기도 한다. 피해자가 완전히 가해자로부터 분리되고 독립해서 설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신고할 테면 해봐라.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그 남자,
"너는 보이면 진짜 간다"고 협박했던 그 남자,
"완전 망가뜨린다"고 문자를 보냈던
그 남자들이 만약 덜루스에 있었다면 모두 즉시 체포되었을 것이다"라고.
"그 남자들에게 끝내 죽임을 당한 여자들이 덜루스에 있었다면 지금 살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파트너로부터 살아남기, 테스트
원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76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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