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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Security/Column

[Column]일은 과연 우리에게 삶에 의미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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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1/09/23/opinion/covid-return-to-work-rt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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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ozen years ago, my friend Patricia Nordeen was an ambitious academic, teaching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and speaking at conferences across the country. “Being a political theorist was my entire adult identity,” she told me 

recently. Her work determined where she lived and who her friends were. She loved it. Her life, from classes to 

research to hours spent in campus cafes, felt like one long, fascinating conversation about human nature and 

government.

12년 전, 제 친구 패트리샤 노딘은 야심찬 학자였다. 시카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전국 각지의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했다. "정치 이론가가 되는 것은 제 성인 정체성의 전부였습니다,"라고 그녀는 최근 제게 말했다. 그녀의 일은 그녀가 어디에서 살고 누가 그녀의 친구인지를 결정했다. 그녀는 그것을 좋아했다. 수업에서부터 연구, 캠퍼스 카페에서 보낸 시간까지 그녀의 삶은 인간의 본성과 정부에 대한 길고 매혹적인 대화처럼 느껴졌다.



But then she started getting very sick. She needed spinal fusion surgeries. She had daily migraines. It became

 impossible to continue her career. She went on disability and moved in with relatives. For three years she had

 frequent bouts of paralysis. She was eventually diagnosed with a subtype of Ehlers-Danlos syndromes, 

a group of hereditary disorders that weaken collagen, a component of many sorts of tissue.

하지만 그 후 그녀는 매우 아프기 시작했다. 그녀는 척추융합 수술이 필요했다. 그녀는 매일 편두통이 있었다. 그녀의 경력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녀는 장애를 일으켜 친척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3년 동안 그녀는 잦은 마비 증세를 보였다. 그녀는 결국 많은 종류의 조직의 구성 요소인 콜라겐을 약화시키는 유전 질환 그룹인 Ellers-Danlos 증후군의 아형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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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had to evaluate my core values,” she said, and find a new identity and community without the work she loved. 

Chronic pain made it hard to write, sometimes even to read. She started drawing, painting and making collages, 

posting the art on Instagram. She made friends there and began collaborations with them, like a 100-day series of 

sketchbook pages — abstract watercolors, collages, flower studies — she exchanged with another artist. A project

 like this allows her to exercise her curiosity. It also “gives me a sense of validation, like I’m part of society,” she said.

 

"저는 저의 핵심 가치를 평가해야만 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고, 그녀가 사랑했던 일 없이 새로운 정체성과 공동체를 찾았다. 만성적인 통증으로 글쓰기가 힘들었고 때로는 읽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콜라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렸다. 그녀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100일 분량의 스케치북 같은 것들 말이다. 추상 수채화, 콜라주, 꽃 연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과 교환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그녀가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또한 "내가 사회의 한 부분인 것처럼, 나에게 확인의 느낌을 준다"고 그녀는 말했다.

 

 

 

 

Art does not give Patricia the total satisfaction academia did. It doesn’t order her whole life. But for that reason,

I see in it an important effort, one every one of us will have to make sooner or later: an effort to prove, to herself and others, that we exist to do more than just work.

저는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조만간 해야 할 중요한 노력을 보았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단지 일 이상의 것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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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salary means?

Wage labor can harm us in subtle and insidious ways, too. The American ideal of a good life earned through work is

 “disciplinary,” according to the Marxist feminist political philosopher Kathi Weeks, a professor at Duke and often-

cited critic of the modern work ethic. “It constructs docile subjects,” she wrote in her 2011 book, “The Problem With 

Work.” Day to day, that means we feel pressure to become the people our bosses, colleagues, clients and customers

 want us to be.

When that pressure conflicts with our human needs and well-being,  we can fall into burnout and despair.

임금 노동은 교묘하고 음흉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Duke의 교수이자 현대 직업 윤리에 대해 종종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정치 철학자인 Kathi Weeks에 따르면, 일을 통해 얻은 좋은 삶에 대한 미국의 이상은 "훈육적"이라고 한다. "그것은 온순한 주제를 구성합니다,"라고 그녀는 2011년 저서 "일하는 문제"에서 썼다. 이는 우리가 상사, 동료, 고객, 고객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매일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압박이 인간의 필요와 복지와 충돌할 때, 우리는 기진맥진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다.

 

 

 

 

Pursuit of meaning

It’s true that people often find their jobs meaningful, as Patricia did in her academic career or as I did while working

on this essay. But for decades, business leaders have taken this obvious truth too far, preaching that we’ll find the

purpose of our lives at work. It’s a convenient narrative for employers, but look at what we actually do all day: For

too many of us, if we aren’t breaking our bodies, then we’re drowning in trivial email. This is not the purpose of a

human life.

패트리샤가 그녀의 학창시절이나 제가 이 에세이를 쓰면서 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직업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기업 지도자들은 이 명백한 진실을 너무 멀리 가져가서, 우리 삶의 목적을 직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교해왔다. 이것은 고용주들에게 편리한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보라.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만약 우리가 우리의 몸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소한 이메일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목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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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uing our genius, whether in art or conversation or sparring at a jiujitsu gym, will awaken us to “a higher life than

 we fell asleep from,” Thoreau wrote. It isn’t the sort of leisure, like culinary tourism, that heaps more labor on others

. It is leisure that allows us to escape the normal passage of time without traveling a mile. The mornings Thoreau

 spent standing in his cabin doorway, “rapt in a revery,” he wrote, ​“were not time subtracted from my life, but so much over and above my usual allowance.” Compared with that, he 

thought, labor was time wasted

예술이든 대화든 주짓수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하든 우리의 천재성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잠든 시간보다 더 높은 삶"을 일깨워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노동력을 쏟아붓는 것은 요리 관광과 같은 종류의 여가가 아니다. 우리가 1마일을 여행하지 않고도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여가이다. 소로가 오두막 문간에 서서 "몰입하는" 시간을 보낸 날 아침, 그는 "내 삶에서 시간을 빼놓지 않고 평소 용돈보다 훨씬 많이 빼먹었다"고 썼다. 그에 비하면, 그는 노동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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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ed Society

That means we need one more pillar: solidarity, a recognition that your good and mine are linked. Each of us,

 when we interact with people doing their jobs, has the power to make their lives miserable. If I’m overworked,

 I’m likely to overburden you. But the reverse is also true: Your compassion can evoke mine.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기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연대, 즉 여러분의 선과 나의 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때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과로하면 너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기 쉽다. 그러나 그 반대도 사실이다. 당신의 동정심이 나를 환기시킬 수 있다.

 

word to me

de · ter · mine : 알아내다, 밝히다, (무엇의 방식 유형을) 결정하다.

spinal fusion surgerie

mi · graine : 편두통

bout [ baʊt ]  : 한바탕, (병을) 한바탕 앓음

validation  [ vælɪdeɪʃən ] : 확인

ubi · qui · tous  [ juːˈbɪkwɪtəs ] : 어디에나 있는, 아주 흔한

man · date : (선거에 의해 국민들로부터 정부나 다른 조직에게 주어지는)권한, 명령하다.

dis · sent  [ dɪˈsent ] :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에 대한) 반대, 반대하다.

legitimate ways to live : 합법적인 삶의 방법

pre · ce · dent : (판결, 공식적인 결정 등의)선례, 판례

in · sidi · ous : 서서히[은밀히] 퍼지는

dis · cip · line  [ ˈdɪsəplɪn ]  : 규율, 훈육, 단련법 징계하다.

take away something from somthing

heap [ hiːp ]  :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더미, 많음, (아무렇게나) 쌓다

evoke  [ ɪˈvəʊk ] : (기억, 감정, 이미지를) 떠오려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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