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엄마가 되기
결혼 2년 만에 다니던 회사의 부서가 사라지면서 강제백수가 되었다. 아기 없는 기혼여성으로 본 면접에서는 남편 믿고 쉬는 사람, 곧 임신해서 혜택만 챙기고 퇴사할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받으며 번번이 탈락했다. 취직하면 3년 이상은 임신하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고, 그렇게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아기를 낳고 나 자신을 찾자’는 맹랑한 생각을 하게 됐다.
임신이란
입덧이 그냥 조금 앓고 지나가는 가벼운 감기나 월경통 정도라고 생각했던, 무지했던 과거의 나. 임신 후에 알아보는 모든 정보들은 임신 상태에서 어떠한 행동을 해도, 어떤 음식을 먹어도 태아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거라는 식으로 귀결되고 있었고, 이상증세와 불편함의 원인은 임신이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니 안심하라며 뭉뚱그려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생명을 잉태한 신성한 임산부와는 붙여 쓰이면 안 되는 단어들만 계속 생각했다. 조심스레 모두가 자는 새벽, 초록창에나 뱉어낼 수 있던 것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집에 갇혀버린 임산부
불러오는 배에 KF94 마스크까지, 유일한 스케줄이었던 2주 간격의 병원 진료조차 버거웠다. 저출산 시대라더니 산부인과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예약이 불가한 초진 시에는 2시간을 대기했고 인기 많은 여자원장님을 보려면 더 긴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임산부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은 당연히 취소되었고 지인들과의 만남은 한없이 뒤로 미루어졌다. 엄마조차 임산부인 딸과의 만남을 불안해했다. 함께 사는 남편을 제외한 모든 관계와의 연결고리가 잘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낸 2주간의 기간에도 휴가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각각의 입장들이 참 달랐다고 한다. 조언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길게 쉬어서 좋겠다. 와이프가 애 보잖아, 술 한 잔 하러 나와.’하는 사람들까지. 출산휴가가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남편이 들은 말은 이거다. “잘 쉬고 왔어?”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이기도 한 사회
임신 막달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병원도 전원해야 했는데,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진료받은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아기 머리둘레가 많이 큰 건 알고 계시죠? 지금 평균보다 5주 이상 크네요. 초면에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어머님이 자연분만에 꼭 뜻이 없으시다면 위험하니 수술 하시는 게 좋아요. 속상하시더라도 꼭 수술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수유실입니다. 수유하러 오세요.”
수술 3일차 아침 병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어제 오후에 막 소변줄을 뺀 참이었고, 장기가 쏟아지는 느낌에 울면서 벌벌 떨며 침대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굴욕적이게도 남편이 변기에 앉혀주고 일으켜주며 오로(분만 후에 나오는 피 등의 분비물)패드까지 갈아줘야 하는 처지였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3일간 씻지 못한 몸을 물수건으로 닦고 마스크를 쓰고 복대를 차고 링거대에 의지하며 어그적 어그적 걸어 소독제를 온몸에 뿌리고 수유실에 입장했다. “아기만 안아보고 갈게요”, “그럼 일단 단추만 풀고 한번 봐봐요.”하며 갑자기 아기 입을 덥석 물려버렸다. “아유 이렇게 잘 먹는데 무슨 준비가 안돼~ 이따 또 콜 할게요~”
나는 그렇게 홀린 듯이 모유 수유의 길에 들어섰고,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쪽잠을 자가며 수유콜을 받고 유축을 하고 있었다. 출산 이후 내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모유 수유 해주세요.”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어느덧 나는 완모(모유로만 수유를 하는 것)를 꿈꾸게 되었다.
모성애를 강요받으면서 여성성은 지켜야 하는 아이러니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임산부에게는 ‘어떻게 이렇게 배만 나오셨어요’란 말이, 산모에게는 ‘애 엄만줄 모르겠어요’란 말이 칭찬인 사회. D라인이란, 완벽하게 태아 크기만큼만 나온 배를 뜻하는 걸까? 산전산후 관리는 아름다운 임산부와 산모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준다면서 더 높은 가격을 받았고, 복대를 꼭 하고 다니라는 사람들은 장기를 잡아주는 용도보다는 뱃살과 허리라인을 잡아준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출산 후 잊고 있던 산후검진을 뒤늦게 다녀왔다. 검진표에 이상증세를 상세하게 작성하라기에 굵직한 것들만 대충 써넣었다. 관절 시큰, 이명, 수술 부위 욱신. 시력감퇴. 의사가 쓱 보더니 “뭐 특별한 이상은 없는 거죠? 출산하고 다 있는 거 말고.”라고 말했다. 출산 후의 여성의 몸도 ‘아기 낳으면 다 그래.’라고 뭉뚱그려지는 걸까.
출처
n.news.naver.com/article/007/0000006712
ps
우리는 엄마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신성시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하고 현실을 좀 더 직시해야한다. 임신은 여자가 한다. 그렇기때문에 남자들은 잘 모른다. 세상엔 많은 매체가 있다. 많은 정보가 있다. 단지 직시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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